제 경력 중 초기에는 한동안 인간공학 개선은 오로지 전문가 몫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현장에서 뭔가 불편하면 담당자에게 말하고, 담당자가 해결해 주는 구조가 당연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제 경력 초기 4~5년 동안 대기업 몇 군데의 컨설팅을 진행한 후 개인적으로는 보람을 느낀 적도 있었지만 그에 못지않은 좌절도 많이 경험했습니다. 인간공학적 개선의 성공은 전문가 한 사람의 노력으로만 가능한 게 아니라 관련 구성원 모두의 동의와 적극적이고 진심 어린 협력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정말 실질적인 변화는 매일 그 작업을 반복하는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걸 그때 처음 실감했습니다.현장이 바꾼 것들 — 참여형 인간공학 성공 사례참여형 인간공학(Participatory Ergonomics)이..
일반인들 입장에서 얼핏 생각해보면 요즘 제조업은 거의 다 자동화되어 험한 일들은 상당 부분 로봇이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회사마다 그리고 현장마다 다르겠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차체, 도장 같은 부분은 상대적으로 로봇의 역할 비중이 크다고 할 수 있지만 의장 공정(도색까지 완료된 차체에 내·외장 부품과 전장품, 동력계 장치 등을 조립하여 자동차의 실질적인 형태와 기능을 완성하는 최종 조립 단계; 일반적으로 자동차 제조의 4대 공정은 프레스 ➔ 차체 ➔ 도장 ➔ 의장의 순서로 이루어집니다)의 경우에는 아직도 작업자들이 직접 수행해야 하는 일들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따라서 의장 공정 같은 곳에서는 많은 작업자가 공구를 들고 해당 작업을 하루 수백..
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근골격계질환 예방은 특정 작업, 특정 작업자에 대한 개선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직접 현장 개선 업무를 맡아보고 나서야, 그게 얼마나 수박 겉핥기식의 접근이었는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거시인간공학(Macroergonomics)은 그 한계를 조직 시스템 전체로 시야를 넓혀서 해결하려는 접근입니다. 이 글은 그 경험에서 출발합니다.작업대를 바꿔도 왜 아픈 사람이 줄지 않았나 — 시스템 설계의 문제제가 처음 현장에서 근골격계 개선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팀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작업대 높이 조정과 공구 교체였습니다. 교과서적인 미시인간공학(Microergonomics) 접근이었죠. 여기서 미시인간공학이란 개별 작업자의 인체 부하, 단일 기계-인간 인터페이스(Human-Machine I..
GSPAS의 기본은 공정 지침서 하나를 AI가 읽고 "이 작업은 허리에 위험합니다"라고 자동으로 차단한다는 개념인데, 놀라운 점은 이에 대한 근거가 이전의 규칙 몇 줄이 아니고 25년 넘게 쌓인 지식에 기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도 현장에서 관련 컨설팅을 하였던 저로서도 제조 현장의 인체공학이 이 정도로 시스템화되어 있고 이제는 현실화되어 적용된다는 사실이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이제까지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조금씩 성과를 낸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DHM과 GSPAS, 왜 이 조합이 나왔을까디지털 인간 모델링(DHM, Digital Human Modeling)이란 가상 환경 안에 사람 인체를 컴퓨터로 재현하여 자세, 근육 부하, 관절 가동 범위를 미리 시뮬레이션하는 기술입니다. 실물 ..
외골격 로봇은 요즘 근골격계질환 예방을 위한 공학적 개선 대책 중 가장 뜨거운 이슈 중의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외국의 시범 사례들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저도 "저 장비가 금방 그리고 광범위하게 현장에 적용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새로 나온 개선 대책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현장에 제대로 적용되는 데에는 보통 시간이 걸리고, 또 어떤 경우에는 작업자들이 끝내 거부해서 좋은 개선 대책이 사장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외골격 로봇은 작업자들이 느끼는 사용 편이성 문제 그리고 비용 등의 요인 때문에 현장에서의 실제 적용은 시간이 좀 더 걸릴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외골격 로봇의 적용 사례들에 대해서 조사해본 결과, 예상보다는 많..
미국은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근골격계질환 문제를 가장 먼저 인식하고 문제 해결을 시도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미국도 아직까지 근골격계질환 예방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해결할 문제들이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 글에서는 근골격계질환 발생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자동차 공장, 병원, 육가공 공장이라는 서로 전혀 다른 세 현장의 개선 대책에 대해서 비교 분석해 보았습니다. 공학적 대책, 실제로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미국 자동차 산업을 보면, 포드(Ford Motor Company)는 GSPAS(Global Study Process Allocation System)라는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여기서 GSPAS란 신차 설계 단계부터 가상의 작업자를 3D 공간에 배치해 관절에 가해지는 하중을 미리 계산하는 디지털 인..
OSHA 병원 eTool은 미국 직업안전보건청(OSHA: 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dministration)이 개발한 웹 기반의 대화형 교육 및 자가 진단 도구입니다. 병원 내 다양한 작업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직업적 안전 보건 위험 요소를 식별하고, 이에 대응할 수 있는 행정적·공학적 통제 방안을 관리자와 근로자에게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솔직히 저는 OSHA 병원 eTool을 처음 접했을 때, 그냥 미국 정부가 만든 딱딱한 매뉴얼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들여다보니 예상보다 훨씬 정교하게 부서별로 쪼개져 있었고, 병원이 실제로 얼마나 위험한 일터인지 새삼 실감했습니다. 2021~2022년 기준으로 병원 근로자 100명당 3.2건의 업무 관련 부상·질..
호주 인구의 29%, 즉 730만 명이 만성 근골격계질환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처음 이 수치를 접했을 때 저는 솔직히 믿기 어려웠습니다. 세 명 중 한 명꼴로 허리, 무릎, 관절이 망가진 채 일하고 생활한다는 뜻이니까요. 저는 그동안 호주가 막연히 산업 안전/보건을 포함한 근로자 복지가 잘되어 있는 나라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직접 현장 자료를 들여다보고 호주의 근골격계질환 현황 및 대응책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호주 MSDs 유병률의 실체근골격계질환(Musculoskeletal Disorders, MSDs)이란 뼈, 관절, 근육, 인대 등 신체 운동 기관에 생기는 만성적인 손상과 기능 저하를 통칭하는 개념입니다. 흔히 '허리디스크' 하나로만 떠올리기 쉬운데, 실제로는 골관절염,..
직업성 요통(Work-related Low Back Pain)은 단순히 "나쁜 자세" 한 가지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닙니다. 인간공학적 위험 요인, 심리적 스트레스, 그리고 개인 체질까지 뒤섞인 복합 문제입니다. 이 글에서는 제가 직접 겪고 공부하면서 깨달은 것들을 바탕으로, 허리 통증의 구조를 짚어보고 실제로 써먹을 수 있는 방법들을 정리해 봤습니다.직업성 요통, 왜 이렇게 흔한가요통은 전 세계 근로자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근골격계 질환 중 하나입니다. 특히 장시간 앉아 일하는 사무직, 무거운 물건을 반복적으로 드는 현장직 모두에서 고르게 나타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요통은 전 세계적으로 장애를 유발하는 단일 원인 1위를 수십 년째 지키고 있습니다(출처: WHO).인간공..
요즘은 매일매일 컴퓨터 앞에 오랫동안 그리고 반복적으로 일하다 보면 어느 순간 목이 뻣뻣하고 손목이 저릿한 느낌이 오는 경험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처음 그런 감각을 느끼게 되면 그냥 피로 탓이거나 나이 탓이라고 보통은 넘기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감각이나 증상은 단순 피로가 아니라 한국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직업병 중의 하나인, 작업관련성 근골격계질환(Work-related Musculoskeletal Disorders)의 전형적인 초기 증상일 경우가 많습니다. 2023년 기준 업무상 질병 판정 건수의 무려 79%가 근골격계 질병일 만큼, 현재 이 문제는 제조업 공장이 아닌 사무실 책상에도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일반 가정에도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국민 3명 중 1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