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제 기억으로는 90년대 후반에 산업의학을 전공하신 몇몇 의사분들과 함께 '농부증 실태와 예방관리'라는 주제의 연구 과제를 당시 농림부로부터 수주하여 3년 동안 수행한 바 있습니다. 아마 이때가 국내에서 농작업 근로자들의 근골격계질환을 처음으로 다루었던 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일반적으로 농부증이라 함은 오랜 기간 농업에 종사하면서 과도한 육체노동, 구부정한 작업 자세, 반복적인 동작 등으로 인해 쌓인 정신적·신체적 장애 증후군을 통틀어 부르는 말로, 일종의 직업병을 의미합니다. 구체적으로 농부증에는 근골격계질환(허리디스크, 무릎관절염, 오십견, 목·어깨 결림, 만성 요통 등), 신체 감각 이상(손발 저림, 혈액순환 장애, 피로 누적, 두통 등), 생리학적 이상(열 스트레스 등), 정신적 증상(우울감, 무기력증 등) 등 다양한 질환이 포함됩니다. 한마디로 농부증은 '골병든다'라는 일상에서 쓰이는 표현의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과제의 주제는 근골격계질환뿐만 아니라 농부증에 포함되는 모든 질환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근골격계질환에 대해서 충분하고 세부적인 조사와 분석을 생각만큼 하지 못했지만 처음으로 농작업에서의 근골격계질환의 위험도를 평가했던 것은 의미가 있었다고 봅니다. 그 후 농촌진흥청의 꾸준한 노력으로 농업의 경우에는 제조업만큼은 아니지만 다른 업종들에 비해서는 체계적으로 농작업과 관련되는 근골격계질환을 평가하고 농작업 개선에 관련되는 결과를 도출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최근 농촌진흥청 조사에 따르면 농업인 업무상 질병의 70~80%가 근골격계질환입니다. 또한 농업인의 근골격계질환 유병률은 일반 근로자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일관되게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건 노환이 아니라 분명한 직업성 질환입니다. 이 글에서는 90년대 말 처음 시도된 농작업에서의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평가와 예방 관리가 현재는 어느 수준에 있는지에 대해서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왜 농사일은 몸을 이렇게 망가뜨리는가?
제가 처음 농작업 현장에 가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자세였습니다. 시설하우스 안에서 딸기를 수확하는 분들이 몇 시간째 쪼그려 앉아 있었고, 과수원에서는 팔을 머리 위로 뻗은 채 적과 작업을 반복하고 계셨습니다. 제조업 현장에서라면 당장 작업 중단 조치가 내려질 법한 자세들이 아무렇지 않게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부담을 수치로 평가하는 도구가 OWAS(Ovako Working Posture Analysing System), REBA(Rapid Entire Body Assessment), RULA(Rapid Upper Limb Assessment) 같은 작업 자세 평가 도구들입니다. 여기서 REBA란 전신의 작업 자세를 항목별로 점수화해 근골격계 부담 수준을 판정하는 인간공학적 평가 방법입니다. 점수가 높을수록 위험 수준이 높아 개선이 시급하다는 뜻인데, 농작업은 이 점수가 만성적으로 높게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적절한 자세 외에도 위험요인은 매우 다양합니다. 경운기나 트랙터에서 발생하는 전신 진동(whole-body vibration), 수확물 상자나 비료 포대 같은 중량물 반복 취급, 적과·포장 같은 손목 반복 동작 등이 함께 겹칩니다. 여기서 전신 진동이란 농기계 운전 중 차체의 떨림이 척추와 내장기관 전체로 전달되는 자극을 뜻하며, 장기간 노출되면 요통과 추간판 탈출증 위험을 높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 요인들이 하나씩 따로 오는 게 아니라 한 작업 안에서 동시에 쏟아진다는 점이 농업 현장을 더 힘들게 만드는 핵심이었습니다.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농작업 관련 근골격계질환의 대표적인 위험요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 부적절한 작업 자세: 쪼그려 앉기·허리 굽히기·상향 작업이 장시간 지속
- 중량물 취급: 수확물 상자·비료 포대·퇴비를 반복적으로 들고 운반
- 반복 동작: 적과·수확·포장 등 손·손목의 빠른 반복 동작
- 농기계 진동: 경운기·트랙터의 전신 및 국소 진동 장기 노출
- 작업 과부하: 농번기의 장시간 노동과 휴식 시간의 절대적 부족
실제로 써보니 달랐던 것들 — 예방 장비와 구조적 개선
일반적으로 편이장비를 보급하면 현장 문제가 해결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가 직접 사례들을 살펴본 결과는 좀 달랐습니다. 장비가 창고에 쌓여 있거나, 한 번 써보고 불편해서 안 쓴다는 얘기를 어렵지 않게 들었습니다. 특히 착용형 근력보조장비, 즉 웨어러블 로봇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웨어러블 로봇이란 어깨나 허리에 착용해 근육이 내야 할 힘을 기계적으로 보조해 주는 장비로, 여러 연구에서 근전도 측정을 통해 근육 부담을 줄이는 효과가 실증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여기서 근전도(EMG, Electromyography)란 근육이 수축할 때 발생하는 전기 신호를 측정하는 방법으로, 특정 작업이 근육에 얼마나 부하를 주는지 객관적으로 수치화할 수 있습니다. 농촌진흥청이 과수와 시설채소 농가를 대상으로 시범 보급한 결과 효과가 확인됐는데도 현장 정착이 더딘 이유는 더위와 착용 불편, 그리고 가격 문제였습니다. 저는 이 장비들이 실패한 게 아니라 보급 방식이 잘못됐다고 봅니다. 장비를 주고 끝내는 게 아니라 사용 교육과 사후 점검이 함께 가야 한다는 걸 사례들을 보면서 분명히 느꼈습니다.
반면 구조적 개선이 이뤄진 사례는 결과가 달랐습니다. 딸기 고설재배가 대표적입니다. 원래는 생산성을 높이려고 재배 베드를 허리 높이로 올린 것인데, 결과적으로 쪼그려 앉는 작업이 사라지면서 요통과 무릎 부담이 크게 줄었습니다(출처: 농촌진흥청). 과수의 저수고 재배나 평덕 재배 전환도 같은 원리입니다. 저수고 재배는 나무 높이를 낮게 유지해 노동력을 줄이고 작업 효율을 높이는 재배 방법으로, 사과, 배, 복숭아, 감 등 다양한 과수원에 널리 도입되고 있습니다. 평덕 재배는 지상 1.5~1.8m 높이에 파이프와 철사로 수평 지지대인 '덕'을 만들고, 그 위로 가지를 넓게 펼쳐 키우는 방법으로, 포도, 다래, 배, 자두처럼 덩굴성이거나 수형 유인이 필요한 과수에 쓰입니다. 재배 방식 자체를 바꿔 위험한 자세가 애초에 발생하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제 경험상 이처럼 작업 환경의 구조를 바꾸는 접근이 장비 한 대를 지원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가고 실효성도 높았습니다.


법이 없는 것도 아닌데 — 제도의 한계와 사각지대
솔직히 저는 농업인에게도 산재보험이 당연히 적용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 꽤 당황했습니다. 국내 농업인의 대다수는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재보험의 실질적 보호 대상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대신 「농어업인의 안전보험 및 안전재해예방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농업인안전보험이 보상을 담당하는데, 이 보험의 근골격계질환 보장 범위가 생각보다 좁습니다.
핵심 문제는 업무 관련성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근골격계질환은 업무상 부담이 축적되어 발생하지만, 퇴행성 변화와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추간판 탈출증이 농작업 때문에 생긴 건지, 나이 들면서 자연히 진행된 건지를 명확히 가르는 기준이 현재로서는 불충분합니다. 이 때문에 보상이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출처: 고용노동부).
또 하나 제가 현장에서 느낀 구조적 문제는 고령·여성 농업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지금 시·군 농업기술센터에서 보급하는 편이장비들이 평균적인 성인 남성의 체형과 근력을 기준으로 설계된 경우가 많습니다. 농가 경영주 평균 연령이 68세를 넘어선 현실에서, 이 기준은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정작 맞지 않는 장비를 주는 셈이 됩니다. 외국인 계절근로자나 고용허가제 근로자의 경우는 안전보건 관리 면에서 더욱 사각지대로 남아 있어, 앞으로의 과제가 적지 않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농업인도 산재보험으로 치료비를 받을 수 있나요?
A. 대다수 개인 농가의 농업인은 산재보험 적용 대상이 아닙니다. 대신 농업인안전보험(정책보험)을 통해 보상받는 구조입니다. 다만 근골격계질환은 퇴행성 변화와의 구분 문제로 보장 범위가 제한적인 경우가 많아, 가입 전 보장 내용을 꼼꼼히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Q. 딸기 고설재배가 허리에 정말 좋은가요?
A. 네, 실제로 효과가 확인된 구조적 개선 사례입니다. 재배 베드를 허리 높이로 올리면 쪼그려 앉는 작업이 사라지기 때문에 요통과 무릎 부담이 크게 줄어듭니다. 초기 설비 비용이 들지만 장기적으로는 치료비와 노동력 손실을 줄이는 측면에서 효율적이라고 봅니다.
Q. 웨어러블 로봇, 농사일에 실제로 쓸 만한가요?
A. 근전도 측정 결과로는 근육 부담을 줄이는 효과가 실증되었습니다. 다만 착용 불편감, 여름철 더위, 높은 가격이 현장 정착의 걸림돌로 꾸준히 지적됩니다. 장비 지원과 함께 사용 교육·사후 점검이 따라올 때 실제 사용률이 올라간다는 점이 사례에서 확인됩니다.
Q. 농작업 근골격계질환 예방에 효과적인 자세 평가 방법은 무엇인가요?
A. 현장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OWAS, REBA, RULA 같은 인간공학적 작업 자세 평가 도구들입니다. 농촌진흥청에서 이를 농작업 특성에 맞게 응용한 작목별 위험성 평가 체크리스트를 개발해 보급 중이므로, 지역 농업기술센터에 문의하면 자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결론
농작업 근골격계질환은 노환이 아니라 구조적인 직업성 질환입니다. 제가 현장 사례들을 살펴보면서 가장 강하게 느낀 건, 장비 몇 대 지원하고 끝내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재배 방식을 바꾸고, 작업 높이를 조정하고, 농업인 스스로 증상을 노환으로 여기지 않도록 인식을 바꾸는 것까지 함께 가야 합니다.
제도적으로도 업무 관련성 인정 기준을 정비해 보상 범위를 넓히고, 고령·여성 농업인의 신체 조건에 맞는 장비 설계가 뒤따라야 합니다. 지역 농업기술센터나 권역별 농업안전보건센터를 통해 작목별 위험성 평가를 받아보는 것이 현실적인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농작업 관련 근골격계질환 예방관리는 제조업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농촌진흥청 등의 꾸준한 노력으로 다른 업종들에 비해서는 농업에 특화된 체계가 어느 정도 잡혀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앞의 네 번째 질문에 대한 답에서 보듯이, 현재는 농작업 특성에 맞는 작업 자세 평가 체크리스트까지 개발해 보급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단시간 안에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겠지만, 농작업 근골격계질환 예방관리의 미래는 꽤 밝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참고: 출처: 농촌진흥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