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 저는 오래 앉아 일하는 게 위험하다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무거운 걸 드는 것도 아니고, 공장에서 기계를 다루는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겠냐 싶었습니다. 그런데 저도 나이를 먹어 가면서, 소위 사회생활을 하고 나서부터 제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제야 제가 얼마나 안일하게 생각했는지 깨달았습니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젊었을 때, 특히 어렸을 때는 저와 생각이 비슷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무직 근골격계질환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있고, 폭넓은 계층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아마도 국내에서 사무직 근골격계질환의 효시는 90년대 중반 KT의 전신인 한국통신의 114 안내 업무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114 안내 업무가 일반적으로 연상되는 전형적인 사무..
미국이 근골격계질환을 대중적으로, 그리고 본격적으로 산업안전보건 이슈로 인식하고 법적 규제를 시작한 시기는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무렵 저 역시 미국에서 관련 컨설팅을 막 시작했는데, 당시 근골격계질환 위험도 1위는 단연 육류 가공업(Meatpacking Industry)이었습니다. 그때와 비교해 산업 구조와 특성이 변했고, 육류 가공업계 자체의 작업 환경 개선 노력 등으로 지금은 순위가 바뀌었습니다. BLS(Bureau of Labor Statistics: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현재 위험도 1위는 운수·창고업(Transportation and Warehousing) 또는 보건의료·사회복지서비스업(Healthcare and Social Assistance)..
솔직히 저는 캐나다의 산업안전보건 체계가 단일하고 촘촘할 거라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캐나다의 사회복지는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역할을 나누어 의료, 노년, 아동, 장애 등 전 생애주기를 아우르는 강력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고 있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캐나다는 영연방 국가 중 하나이기 때문에 서유럽 나라들처럼 산업안전보건 분야에서도 전통적으로 선진적인 제도를 갖추고 있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저는 주(Province)마다 규제 강도가 제각각이고 법적 구속력도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선진국 수준의 예방 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불균형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캐나다의 근골격계질환(MSDs) 예방관리가 어..
제가 국내 현장에서 근골격계질환 예방 관리 컨설팅을 하면서 자동차 공장의 개선대책을 세울 때 가장 많이 참고한 곳은 아마도 BMW일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BMW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 바이에른주에 위치한 딩골핑(Dingolfing) 공장에서 시작한 근골격계질환(MSDs) 예방 프로그램에 대해서 정리해보았습니다. 딩골핑 공장이 먼저 직면한 문제2007년 BMW 딩골핑 공장 경영진은 불편한 숫자를 마주했습니다. 향후 10년 안에 생산직 평균 연령이 39세에서 47세로 오를 것이라는 예측이었습니다. 고령 근로자는 같은 작업을 해도 회복이 더뎠고, 결근 기간도 길었습니다. 그렇다고 젊은 인력으로 교체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 공장은 지역 최대 고용주였고 고용 보장을 약속한 상태였습니다.저는 이 대목이 굉..
토요타는 일반적으로 생산성뿐만 아니라 작업 환경 면에서도 작업자를 위해 선제적으로 많은 시도를 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작업자들도 이런 회사의 배려에 발맞추어, 다른 전형적인 자동차 기업과는 달리 1950년에 마지막 파업을 하고 1962년 '무파업 선언' 이후 파업권을 사실상 회사에 반납하였습니다. 그 이후 토요타 노사는 회사가 고용 안정을 보장하고 노조는 위기 시 임금 동결을 자처하거나 생산성 향상에 앞장서는 협력적 관계(이른바 '수레의 두 바퀴')를 유지하며, 글로벌 1위 자동차 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따라서 토요타가 근골격계질환 예방의 모범 사례로 불린다는 말은 얼핏 들으면 무리 없이 들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세계 최고의 제조 시스템과 현장 분위기를 갖춘 회사에서도 ..
일반 사람들의 시각에서 보면 전자 제품 조립 작업은 근골격계 질환과 별로 관련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전자 제품의 종류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전자 제품 조립 작업은 상대적으로 중량물을 다루는 경우도 적고, 힘을 많이 쓰는 경우도 흔치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앉아서 하는 작업도 있으니까 쉽게 그렇게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작업 자세와 작업 빈도는 근골격계 질환의 가장 중요한 위험 요인들입니다. 그런데 전자 제품 조립 작업은 작업 특성상 이 두 가지 요인과 매우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특히 작업 빈도 요인의 경우에는 전자 제품 조립 작업이 어떤 다른 업종의 그것보다도 높은 위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전자 제품 조립 작업은 기존의 전형적인 고위험도 업종의 작업들 못지않..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는 말, 현장에서 일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거나 직접 내뱉어봤을 겁니다. 저도 산업 현장 인간공학 평가를 다니면서 계속 머리 위로 팔을 들고 작업하는 자동차 제조 현장의 하체 조립 작업자들, 자동차 정비공장의 정비사들, 하루 종일 허리를 접었다 폈다 하는 물류 작업자들을 만날 때마다 "저 사람들 몇 년 뒤 어떻게 되나"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와 관련하여 제가 미국에서 근골격계질환 컨설팅을 막 시작했을 무렵 담당했던 가죽 공장을 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워낙 오래전이고 업종의 특성상 그 공장의 모든 작업 환경은 특히 더 열악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제가 가장 잊을 수 없었던 부분은 그 공장에서 근무하는 몇 명의 젊다 못해 어리다고 말할 수 있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
미국 자동차 공장 조립 라인에는 로봇이 넘쳐나지만 여전히 손목, 어깨, 허리 부상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1990년대부터 미국 자동차 산업에 적용되기 시작한 린 생산방식(Lean Production)도 주요 요인 중 하나라고 판단됩니다. 린 생산방식은 분명 생산의 효율을 높인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이면에서 작업자의 몸이 어떻게 영향을 받고 있는지, 그리고 작업자 입장에서는 어떤 부작용을 경험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린 생산방식이 작업자 몸에 남긴 것제가 직접 자동차 공장 현장 사례들을 들여다보면서 가장 먼저 마주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10~20년 전에 비하면 자동화가 이렇게 발전했는데, 왜 부상자는 줄지 않는가?" 그 답은 생산방..
일반인들 입장에서 얼핏 생각해보면 요즘 제조업은 거의 다 자동화되어 험한 일들은 상당 부분 로봇이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회사마다 그리고 현장마다 다르겠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차체, 도장 같은 부분은 상대적으로 로봇의 역할 비중이 크다고 할 수 있지만 의장 공정(도색까지 완료된 차체에 내·외장 부품과 전장품, 동력계 장치 등을 조립하여 자동차의 실질적인 형태와 기능을 완성하는 최종 조립 단계; 일반적으로 자동차 제조의 4대 공정은 프레스 ➔ 차체 ➔ 도장 ➔ 의장의 순서로 이루어집니다)의 경우에는 아직도 작업자들이 직접 수행해야 하는 일들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따라서 의장 공정 같은 곳에서는 많은 작업자가 공구를 들고 해당 작업을 하루 수백..
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근골격계질환 예방은 특정 작업, 특정 작업자에 대한 개선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직접 현장 개선 업무를 맡아보고 나서야, 그게 얼마나 수박 겉핥기식의 접근이었는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거시인간공학(Macroergonomics)은 그 한계를 조직 시스템 전체로 시야를 넓혀서 해결하려는 접근입니다. 이 글은 그 경험에서 출발합니다.작업대를 바꿔도 왜 아픈 사람이 줄지 않았나 — 시스템 설계의 문제제가 처음 현장에서 근골격계 개선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팀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작업대 높이 조정과 공구 교체였습니다. 교과서적인 미시인간공학(Microergonomics) 접근이었죠. 여기서 미시인간공학이란 개별 작업자의 인체 부하, 단일 기계-인간 인터페이스(Human-Machine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