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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과 근골격계질환 (하청 구조, 예방 한계, 자동화)

LA로컬 2026. 10. 3. 07:17

목차


    요즘 근골격계질환 관련 최대 관심 업종은 자동차, 전자, 육류 가공업 등이지만, 제가 90년대 중반 처음 국내에서 근골격계질환 컨설팅을 한 대상은 KT의 전신인 한국통신의 일선 전화국과 조선소였습니다. 아마도 국내에서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최초 문제 제기가 일선 전화국의 전화 교환 업무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겁니다. 그러나 이 전화 교환 업무 같은 경우에는 예전에 두꺼운 전화번호부를 일일이 찾아보고 안내하던 시절에서 이미 컴퓨터를 이용한, 어느 정도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변화되는 시기였고, 한국통신 자체적으로 사무 인간공학에 근거한 작업 환경뿐만 아니라 스트레칭, 재활 프로그램 등을 보강하여 그 이후로는 근골격계 질환 문제가 커다란 이슈가 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조선소에 대한 제 첫인상은 근골격계질환도 문제이지만 전반적인 작업 환경 자체가 너무 열악하고 위험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조선업의 특성상 쉽게 관리할 수 없는 특수한 부분이 너무 많아서 산업안전보건 측면에서는 어디서부터 개선을 해 나갈지 매우 난감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런 부담감 때문에 저는 그 이후로 조선업종의 근골격계 질환 컨설팅에는 거의 참여하질 않았는데, 가끔 조선업의 근골격계질환 예방 관리의 현실을 들어 보면 제가 우려했던 대로 매우 피상적으로만, 정확히 말하면 법적인 요건만 맞추는 형식적인 조사들이 많았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조선업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도 많지만, 결국 현재 자동차 산업에서의 결과물과 비교하면 많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업에서의 근골격계질환 문제는 단순히 근골격계질환 문제만으로 접근하지 말고, 좀 더 큰 시야에서 작업생리학적으로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는 일환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작업생리학은 작업자가 근력을 이용해 일을 할 때 받는 신체적 스트레스와 생리적 반응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에너지 소비량, 근육 피로와 기능, 작업 환경 평가(소음, 기온, 진동 등이 신체에 주는 영향), 생체역학(인체의 움직임, 근력, 근지구력, 자세 등) 등을 주로 다룹니다. 이 글에서는 조선업에서의 근골격계 질환 관련 현재의 상황을 제 평소의 생각과 비교하여 정리해 보았습니다. 



    하청 구조 속에서 예방 제도가 작동하지 않는 이유

    제가 처음 유해요인조사 보고서를 들여다봤을 때, 서류상으로는 꽤 잘 정비된 시스템처럼 보였습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657조에 따라 사업주는 근골격계부담작업이 있는 경우 3년마다 유해요인조사를 실시해야 하고, 새로운 설비나 공정 변경이 생기면 지체 없이 수시조사도 해야 합니다. 여기서 유해요인조사란, 작업 자세·반복 동작·중량물 취급 등 근골격계 부담을 유발하는 요인을 체계적으로 평가하고 기록하는 절차를 말합니다. 제도 자체만 보면 촘촘합니다.

    그런데 제가 실제로 확인한 현실은 달랐습니다. 조선소의 위험한 작업, 그러니까 용접, 사상(그라인딩), 취부 같은 작업들은 대부분 사내하청이나 물량팀이 맡습니다. 여기서 취부란 선박 부재를 서로 맞춰 임시로 고정하는 작업으로, 좁은 공간에서 무릎을 꿇거나 누운 자세가 필수인 고강도 부담 작업입니다. 문제는 이 하청업체들이 워낙 폐업과 재설립을 자주 반복하고 예산도 부족하다 보니, 정기적인 유해요인조사나 보건 관리를 이어 가는 게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가장 많이 다치는 사람들이 제도의 보호를 가장 적게 받는 역설이 생깁니다. 원청은 우수 사례를 만들어 발표하고, 하청 노동자는 통증을 참다가 질환이 중증화된 뒤에야 산재를 신청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기(납기일) 우선 문화와 다단계 하청 구조가 만들어 낸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평가 도구로는 REBA(신체 부위별 작업 자세를 그림과 배점표로 분석하는 방법)나 OWAS(작업을 촬영해 자세를 코드화하는 방법)가 활용되는데, 이 도구들이 제 기능을 하려면 분석 대상이 하청 노동자의 실제 작업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조사 범위는 종종 원청 직영 작업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조선업 하청 노동자들이 원·하청 공동 안전보건 거버넌스를 요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조선업의 작업들은 자동차나 전자 제품 제조업의 작업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비정형적이고 작업 주기도 길어서 REBA나 OWAS 같은 관찰 기반 자세 평가 도구만으로는 현실적인 위험도 평가가 어렵습니다. 조선업의 특성상 예방 관리가 힘든 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근골격계부담작업 11종은 하루 작업 시간과 빈도를 기준으로 정의되어 있어, 작업 내용과 시간이 날마다 달라지는 조선업의 비정형 작업은 해당 여부를 판정하기 어렵습니다 (출처: 고용노동부)
    • 하청업체는 폐업과 재설립이 잦아 조사의 연속성이 끊기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 원청 작업 환경이 위험 원인임에도 하청 노동자가 개선을 요구하기 어려운 권력 관계가 존재합니다
    • 2022년 도입된 업무관련성 추정 제도로 특정 직종·질환의 산재 인정 절차가 간소화됐지만, 세부 기준은 변경 가능하므로 근로복지공단 확인이 필요합니다 (출처: 근로복지공단)
    • 작업의 고유한 특성 및 긴 작업 주기로 인하여 기존의 위험도 평가 방법을 이용하기 어렵습니다
    요약: 유해요인조사 제도는 갖춰져 있지만, 다단계 하청 구조 탓에 가장 위험한 작업을 하는 노동자가 가장 적은 보호를 받는 구조적 역설이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조선소 블럭 작업시의 취부 작업

    자동화는 답인가 — 로봇 도입의 가능성과 한계

    최근 조선업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논의되는 변화는 단연 로봇 도입입니다. 제가 관련 자료를 정리하면서 솔직히 놀란 건, 그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는 점이었습니다.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삼호는 약 220대의 용접 로봇을 이미 투입했고, HD현대 조선 3사는 최근 1~2년 사이 협동로봇 170여 대를 현장에 들였습니다. 협동로봇이란 안전 펜스 없이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작동하도록 설계된 산업용 로봇으로, 기존 산업용 로봇보다 유연하게 배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한화오션도 거제 사업장에 80여 대의 협동로봇을 투입했고, 삼성중공업은 레인보우로보틱스와 협약을 맺어 AI 탑재 용접 로봇을 개발 중입니다.

    여기서 제가 주목한 건 로봇이 어느 공간에 들어가느냐는 겁니다. 현재 용접 로봇이 잘 작동하는 곳은 상대적으로 정형화된 작업이 가능한 구간입니다. 반면 이중저처럼 성인 남성이 겨우 들어가는 협소한 밀폐 공간, 매번 형태가 달라지는 블록 내부는 여전히 사람이 직접 몸을 구겨 넣어야 하는 영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비정형 작업의 문제입니다. 자동차 라인처럼 고정된 위치에서 반복되는 게 아니라, 매번 공간과 자세가 달라지는 작업에 로봇을 적용하기란 기술적으로 훨씬 복잡합니다.

    HD현대 측은 미국 휴머노이드 기업 페르소나AI와 협력해 조선업 특화 기능을 개발 중이며, 2026년 시제품 완성, 2027년 현장 실증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제 판단으로는 이 일정이 지켜진다 해도 실질적인 현장 확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로봇이 완전히 대체하기 어려운 작업에서는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착용형 근력 보조 장비, 즉 웨어러블 로봇이 하나의 선택지로 검토되고 있습니다. 웨어러블 로봇이란 사람 몸에 직접 착용해 근육과 관절의 부담을 줄여 주는 외골격 형태의 장치입니다. 현대차그룹의 '엑스블 숄더'는 모터나 배터리 없이 스프링 탄성만으로 어깨 관절 부담을 최대 60%, 어깨 근육 사용량을 최대 30% 줄일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팔을 머리 위로 든 채 진행하는 상향 용접이나 도장 작업이 많은 조선업에도 충분히 적용 가능한 방향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런 장비가 현장에 정착하려면 장비 보급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무거운 보호구를 이미 착용한 상태에서 웨어러블 장비까지 걸치면 오히려 불편하다는 현장 반응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조선업의 경우에는 더욱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여형 작업 환경 개선 기법(PAOT, Participatory Action-Oriented Training)이 함께 움직여야 기술 도입의 실효성이 올라간다고 생각합니다. PAOT는 사업주와 노동자가 함께 현장을 점검하고, 노동자가 점검표를 활용해 실천 가능한 개선 대책을 직접 제안하는 방식입니다.

     

    요약: 용접 로봇과 협동로봇 도입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지만, 협소한 밀폐 공간의 비정형 작업은 여전히 사람 몫이며, 이 간극을 웨어러블 로봇과 참여형 개선이 함께 메워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조선업 근골격계질환은 어떤 부위에 가장 많이 생기나요?

    A. 제가 정리해 본 결과, 작업 유형에 따라 부위가 다릅니다. 용접·취부 작업은 허리(요추 추간판탈출증)와 목(경추 추간판탈출증) 부담이 크고, 사상 작업은 손목의 수근관증후군과 팔꿈치 외상과염이 많습니다. 쪼그려 앉는 시간이 긴 작업에서는 무릎 반월상연골판 손상도 흔하게 나타납니다. 그라인더 같은 진동 공구를 장기간 사용하면 손가락이 하얗게 변하고 저리는 손팔진동증후군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Q. 하청 노동자도 산재 신청이 가능한가요?

    A. 가능합니다. 산재보험은 원청·하청 같은 고용 형태와 관계없이 적용되므로, 하청 노동자도 직영 노동자와 똑같이 산재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또한 2022년 도입된 업무관련성 추정 제도 덕분에, 조선업 용접공 등 특정 직종에서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한 노동자가 해당 질환에 걸리면 업무관련성을 추정해 절차가 간소화됩니다. 다만 대상 직종, 질환, 근무 기간 등 세부 기준은 개정될 수 있으니, 실제 신청 전에 근로복지공단이나 전문 노무사를 통해 최신 기준을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Q. 유해요인조사는 얼마나 자주 해야 하나요?

    A. 원칙적으로 3년마다 정기조사를 실시해야 합니다. 신설 사업장은 신설일부터 1년 이내에 최초 조사를 해야 하고, 근골격계질환자가 발생하거나 새로운 부담작업·설비가 도입되면 지체 없이 수시조사를 실시해야 합니다. 조선소는 수주 상황에 따라 공정이 자주 바뀌기 때문에 수시조사 사유가 다른 업종보다 훨씬 빈번하게 발생하는 편입니다.

     

    Q. 웨어러블 로봇은 조선소에서 실제로 쓰이고 있나요?

    A. 조선소 전체에 본격 보급된 수준은 아니고, 시범 도입 단계에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건설 현장에서는 현대건설이 천장 작업자를 대상으로 상지 근력 보조 장비를 업계 최초로 투입한 사례가 있는데, 팔을 머리 위로 드는 상향 작업이 많은 조선업에도 충분히 적용할 만합니다. 착용 편의성과 중량 문제가 해결되면 현장 확산 속도는 더 빨라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이중저(선박 바닥을 이중 구조로 만든 공간) 같은 협소한 밀폐 공간에서는 장비를 착용한 채 움직이기 어려워 적용에 제약이 클 것으로 생각합니다.

     

    결론

    제가 이 주제를 파고들면서 가장 크게 느낀 건, 조선업 근골격계질환문제는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구조가 막혀 있어서 해결이 더딘 문제라는 겁니다. 유해요인조사 제도도 있고, 로봇도 들어오고, 웨어러블 장비도 개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위험한 공간에서 가장 오래 일하는 하청 노동자가 이 모든 것의 바깥에 있는 한, 산재 통계는 좀처럼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정리하면, 세 가지가 동시에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원청과 하청을 함께 묶는 안전보건 관리 체계, 다국어 기반의 실질적인 현장 교육, 그리고 공기 압박을 제도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장치입니다. 로봇이 사람을 완전히 대체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만큼, 그 사이를 버티는 노동자들에 대한 현실적인 보호가 먼저입니다.

    참고: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 / 근로복지공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