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는 말, 현장에서 일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거나 직접 내뱉어봤을 겁니다. 저도 산업 현장 인간공학 평가를 다니면서 계속 머리 위로 팔을 들고 작업하는 자동차 제조 현장의 하체 조립 작업자들, 자동차 정비공장의 정비사들, 하루 종일 허리를 접었다 폈다 하는 물류 작업자들을 만날 때마다 "저 사람들 몇 년 뒤 어떻게 되나"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와 관련하여 제가 미국에서 근골격계질환 컨설팅을 막 시작했을 무렵 담당했던 가죽 공장을 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워낙 오래전이고 업종의 특성상 그 공장의 모든 작업 환경은 특히 더 열악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제가 가장 잊을 수 없었던 부분은 그 공장에서 근무하는 몇 명의 젊다 못해 어리다고 말할 수 있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8, 19살가량의 작업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나이도 한창때였지만 그 나이 또래들 중에서도 체력적으로 매우 우수한 젊은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작업은 밤 12시부터 오전 5시까지 도살장에서부터 들어오는 소가죽을 하나씩 공장으로 들어가는 행거에 2인 1조로 거는 것이었고, 일이 상대적으로 힘들었던 만큼 그들의 임금은 그 공장의 다른 작업자들과 비교하면 거의 두 배 정도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완전히 처리된 완제품 소가죽은 상대적으로 가벼울 수 있지만 도살 직후의 소가죽 무게는 피, 지방, 수분 등이 포함되기 때문에, 소의 크기에 따라 달라지지만 적게는 30kg에서 많게는 60kg 이상까지 나간다고 합니다. 아무리 젊고 혈기 왕성한 이들도 이 작업을 2년 정도 하고 나면 허리 부상이 생겨서 일을 그만두고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당시에 들었습니다. 근래 들어 그들이 떠오를 때면, 그 당시에 요즘 같은 시설이나 장비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웨어러블 로봇, 즉 엑소스켈레톤이 그 답이 될 수 있을까 싶어 직접 여러 사례를 살펴보았습니다.
현장에서 실제로 쓰이는 엑소스켈레톤, 숫자로 보면
웨어러블 로봇 중에서 가장 먼저 산업 현장에 뿌리를 내린 건 어깨 보조형입니다. 팔을 어깨 위로 올려 오랫동안 작업하는 이른바 오버헤드(overhead) 작업, 그러니까 윗보기 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삼각근과 승모근이 먼저 망가지기 때문입니다. 회전근개 손상으로 이어지는 건 시간문제고, 저도 자동차 공장 라인에서 작업자들이 팔을 들고 볼트를 죄는 모습을 보면서 "저게 8시간이면 어깨가 남아나겠냐" 싶었습니다.
Ford는 2018년에 전 세계 15개 공장에 상체 엑소스켈레톤 75대를 도입했고, Toyota 캐나다 공장에서는 작업자 16명이 Levitate Airframe을 착용한 상태에서 표면 근전도(EMG: Electromyography)를 측정한 학술 평가가 이뤄졌습니다. 여기서 EMG란 근육이 수축할 때 발생하는 미세한 전기 신호를 피부 표면에서 측정해 근육의 활성도와 피로도를 수치화하는 방법입니다. 단순히 "덜 힘들다"는 느낌이 아니라 근육이 얼마나 덜 쓰이는지를 데이터로 잡아내는 거죠(출처: NIH(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미국 국립보건원) PubMed Central).
핀란드에서 지붕공, 비계공, 조적공 등 15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건설 현장 연구에서는 장치를 착용했을 때 측정 대상 8개 근육의 평균 활성도가 20.2% 줄었고, 삼각근 앞쪽과 가운데 쪽은 각각 32.2%, 46.2% 감소했습니다. 국내에서는 현대자동차·기아가 엑스블 숄더(X-ble Shoulder)가 무동력, 즉 배터리 없이 스프링과 탄성 구조만으로 어깨 관절 부하를 최대 60%까지 줄인다고 발표했고, 첫 납품처는 대한항공이었습니다. 항공기 정비는 기체가 워낙 커서 정비사가 팔을 들고 작업하는 시간이 유달리 길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습니다. 이후 한국철도공사, 농업 현장, 심지어 국가유산 돌봄 종사자들에게까지 적용이 확대된 걸 보면서, 이 장치가 생각보다 넓은 틈새를 파고들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허리 보조형도 물류와 제조 현장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습니다. 허리 보조형은 크게 능동형과 수동형으로 나뉩니다. 능동형(Active)이란 모터나 유압으로 직접 힘을 만들어내는 방식이고, 수동형(Passive)은 스프링이나 탄성 소재가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풀어주는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능동형은 조력자가 직접 밀어주는 것, 수동형은 허리를 굽힐 때 늘어난 고무줄이 펼 때 당겨주는 것에 가깝습니다. 수동형 허리 보조 장치를 착용하고 15분간 반복 들기 작업을 했을 때 요추와 흉추의 척추기립근 활성도가 21% 줄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고, 능동형은 최대 80%까지 줄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자동차 하부 조립처럼 무릎을 굽힌 채 오래 버텨야 하는 공정에서는 하지 보조형, 일명 "의자 없는 의자" 형태가 쓰입니다. 현대자동차는 2017년부터 H-CEX(Chairless Exoskeleton)를 시범 운용했고, 국내 연구에서 자동차 조립 라인 볼트 체결 작업을 평가한 결과 하지 엑소스켈레톤 착용 시 근활성도가 EMG 기준으로 36.3% 감소했습니다.
- 어깨 보조형: 오버헤드 작업에서 삼각근 활성도 최대 46% 감소(핀란드 건설 현장 연구)
- 허리 보조형: 척추기립근 활성도 수동형 21%, 능동형 최대 80% 감소
- 하지 보조형: 자동차 조립 공정에서 EMG 기준 근활성도 36.3% 감소
- 돌봄·간호: Cyberdyne HAL(Hybrid Assistive Limb) 착용 후 60kg 들기에 실패했던 4명이 성공, 요추 피로 점수도 평균 62→43mm(100mm 척도)로 개선


숫자가 좋아도 현장에서 방치되는 이유
제가 직접 여러 도입 사례를 들여다보면서 가장 당혹스러웠던 건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와 "실제로 안 쓴다"는 현장 분위기가 공존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자동차 물류 현장에서 최대 18개월간 허리 보조 소프트 수트를 사용한 연구를 보면, 참가자 24명 중 22명이 전반적으로 긍정적이라고 답했는데 실제로 계속 쓴 사람은 11명뿐이었습니다(출처: Taylor & Francis Online). 만족과 지속 사용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걸 이 숫자가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GE가 1965년부터 미군과 함께 개발한 초기의 대표적인 엑소스켈레톤 하디맨(Hardiman)은 착용자의 힘을 25배로 키운다는 야심 찬 목표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자체 무게가 680kg에 달했습니다. 착용자를 돕기는커녕 짓누를 수 있었고, 제어 시스템이 불안정해 폭주할 위험까지 있었습니다. 결국 완전 착용 실험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록히드 마틴의 HULC(Human Universal Load Carrier)는 군인의 중량물 운반을 돕기 위해 개발되었는데, 배터리가 방전되면 장비 자체가 수십 킬로그램짜리 금속 짐으로 돌변한다는 치명적인 결함을 끝내 해결하지 못해 전면 도입이 무산되었습니다.
현장 수용성 문제는 기술적 결함 못지않게 무겁습니다. 독일 채소 농장과 프랑스 포도밭에서 진행된 시험에서는 통증과 불편감, 열 스트레스, 그리고 "이게 실제로 나한테 도움이 되나?" 싶은 체감 효과 부족이 포기 이유로 꼽혔습니다. 계절 고용이나 성과급 계약 구조에서는 장비를 입고 벗는 데 걸리는 시간 자체가 손해라는 인식도 있었고, 언어 장벽까지 수용을 방해했습니다. 반대로 작업자를 도입 결정에 직접 참여시키고, 관리자가 현장에서 함께 관여했을 때 수용도가 올라갔습니다. 현대자동차·기아가 엑스블 숄더 개발 과정에서 2022년부터 300명 이상의 현장 작업자 의견을 반영했다는 점이 실제로 납품까지 이어진 이유 중 하나라고 저는 봅니다.
인간공학 관점에서 또 하나 놓치기 쉬운 함정이 있습니다. 바로 부담의 전이 문제입니다. 여기서 부담의 전이란 한 부위의 근육 부하를 줄였더니 다른 부위에 부하가 옮겨붙는 현상을 말합니다. 작업대 높이를 달리해가며 평가한 연구에서 하지 엑소스켈레톤은 척추기립근 활성도를 평균 39% 줄였지만, 높은 작업대에서는 대퇴직근 활성도가 오히려 높아졌습니다. "허리는 편해졌는데 허벅지가 더 힘들어졌다"는 건 완전한 성공이 아닙니다. 작업 자세를 몸통·목·다리와 위팔·아래팔·손목으로 나눠 위험 점수를 매기는 전신 자세 평가 도구인 REBA(Rapid Entire Body Assessment)를 함께 적용했을 때도, 특정 조건에서는 몸통과 다리의 점수가 오히려 나빠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EMG 하나만 보고 "효과 있다"고 결론 내리는 건 위험합니다.
센서 오작동 문제도 간과할 수 없었습니다. 근전도(EMG) 신호로 움직임을 제어하는 능동형 장치의 경우, 센서가 읽어 들이는 신호의 품질이 작업자의 땀, 각질, 체모 등에 의해 급격히 떨어집니다. 실험실의 통제된 환경과 실제 공장 바닥은 완전히 다른 세계입니다. 논문에서 읽는 것과 실제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 사이에는 아직까지 큰 간격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산업용 엑소스켈레톤은 실제로 효과가 있나요?
A. 연구 수치만 보면 분명히 있습니다. 어깨 보조형은 삼각근 활성도를 30~46%, 허리 보조형은 척추기립근 활성도를 20% 이상 줄이는 효과가 실험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다만 현재까지의 사례들을 살펴보면 실험실 조건과 실제 현장 사이의 간격이 생각보다 큽니다. 효과가 나타나는 작업과 조건을 먼저 꼼꼼히 따져야 합니다.
Q. 현장 작업자들이 웨어러블 로봇을 잘 안 쓰는 이유가 뭔가요?
A. 착용과 탈착에 시간이 걸리고, 장시간 입으면 열 스트레스와 피부 압박이 생깁니다. 여기에 센서 오작동이나 움직임 제약까지 겹치면 "이거 차고 일하는 게 더 불편하다"는 결론에 쉽게 도달합니다. 연구에서도 만족도와 실제 지속 사용률이 따로 노는 경우가 많았는데, 도입 과정에 작업자를 참여시켰는지가 수용도를 가르는 중요한 요인으로 꼽혔습니다.
Q. 수동형과 능동형 엑소스켈레톤, 어떤 걸 선택해야 하나요?
A. 현장 조건과 목적에 따라 다릅니다. 수동형은 배터리가 없어 가볍고 유지보수가 쉬워 반복 동작이 많은 제조·물류 현장에 적합합니다. 능동형은 보조력이 훨씬 크지만 무겁고 충전이 필요해, 중량물을 자주 다루는 작업이나 특수 임무처럼 강한 힘이 필요한 상황에 맞습니다. 제 생각에는 산업 현장 첫 도입이라면 수동형으로 시작해 적응도를 먼저 확인하는 게 현실적입니다.
Q. 엑소스켈레톤이 한 부위를 도우면 다른 부위가 더 힘들어진다는 게 사실인가요?
A. 네, 연구에서 실제로 확인된 현상입니다. 하지 엑소스켈레톤이 척추기립근 활성도를 줄였지만, 높은 작업대에서는 대퇴직근 활성도를 오히려 높인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를 부담의 전이라고 부르는데, 이 때문에 EMG 하나만이 아니라 REBA 같은 전신 자세 평가와 함께 보는 게 필수입니다. 목표 근육만 좋아지고 인접 부위가 나빠지면 진짜 개선이 아닙니다.
결론
웨어러블 로봇과 엑소스켈레톤이 작업 관련 근골격계질환(WMSDs) 예방에 기여할 수 있는 건 분명합니다. 제 경험상 이 기술이 가장 빛을 발하는 건 자동화가 불가능하고 신체 부담이 명확하게 특정 부위에 집중되는 작업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가죽 공장에서 밤새 소가죽을 걸던 젊은 작업자들에게도 이런 장비가 있었다면 분명 도움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근활성도가 줄었다"는 연구 결과를 현장 성공과 동일시하는 순간 함정에 빠집니다. 부담의 전이, 장기 사용률, 조직 문화와 현장 수용성까지 함께 설계해야 진짜 도구가 됩니다.
엑소스켈레톤은 작업장 재설계나 자동화의 대안이 아니라, 그 둘이 닿지 못하는 틈새를 메우는 보완 수단입니다.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면 작업 분석부터 시작해 어떤 동작에 부하가 집중되는지 먼저 파악하고, 작업자를 처음부터 결정에 참여시키는 것을 권합니다. 인간공학적 개선 대책이 늘 그래 왔듯이, 여기서도 기술보다 사람이 먼저입니다.